한국은 다분히 수직적인 사회인 것 같다. 어떻게서든 서열을 나누고 위아래를 확실히 하고 시작하려 한다. 일년 먼저 학교 들어간 것이 반말과 존댓말을 결정짓는다. 내가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웃어른을 공경하라. 나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웃어른만 존중해야 되나? 우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오히려 윗사람일수록 더욱 아랫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좋은 상사의 조건이라고 제목을 썼는데 아주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랫사람을 자기와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이다. 내가 아주 싫어하는 것이 권위주의와 내가 하면 되고 남이 하면 안되는 모순적인 사고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지금까지 만났던 나의 상사는 나를 본인과 동등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참에 나의 상사들의 자랑을 좀 해야겠다.
지금 나의 상사인 실비는 상사라기보다는 편한 친구같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워낙 농담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 가끔씩 "넌 해고야!"라고 하긴 하지만 ㅎㅎ 예를 들면 전에 리옹 학회를 다녀오고 실비와 토마스라는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영어는 존댓말이 없으니 반말로 써보면
실비: 너 리옹에서 **와 이러이러한 문제 이야기 했냐?
나: 아니 안했는데 그 친구랑 놀기만했다.
실비: 뭐야? 내가 왜 니가 리옹 학회에 간 것을 지원해 줘야 하는 지 모르겠다!
나: 토마스, 봤지? 실비는 나를 너무 싫어해서 이렇게 매일 나를 해고할 생각만 한다니깐
실비: 맞아. 나는 나쁜 보스야
나: 그건 사실이야. 실비는 나쁜 보스야. 하지만 나의 좋은 친구야.
그리고 얼마전에는 내가 프랑스어를 못해 어려움이 있어서 실비에서 무엇을 좀 물어봤는데 실비가 불어로 된 서류들을 작성해 주면서 자기가 나의 비서로서 괜찮지 않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서로 편하게 친구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세미나를 할 때도 긴장감 없이 웃으면서 질문하고 이야기하는 환경이 조성되니 수학적인 토론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다.
나의 그 전 상사는 대학원때 지도교수님이다. 나는 물론 한국의 거의 모든 대학원생들이 그렇듯 지도교수님께 (내 생각에는) 매우 공손하게 대해 드렸다. 그렇지만 교수님께서도 내가 교수님을 존중하듯이 혹은 오히려 그 이상으로 나를 존중해 주셨다. 나에게 뿐만아니라 우리 교수님은 모든 사람을 존중하시는 분이시다. 내가 교수님께서 반말을 사용하시는 모습을 딱 두번 봤는데 한번은 친구분과 전화통화하실 때였고 또 한번은 따님과 이야기하실 때였다. 교수님께서 단순히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존댓말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진심으로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정도의 말씀을 하신다. 교수님의 이러한 인품을 직접 곁에서 보고 나면 교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쌓이게 되어 교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그것이 진정으로 나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조언도 자주 구하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미래의 보스가 될 미네소타의 빅이라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실 나는 직접 빅과 만나서 이야기 해본적은 없다. 그렇지만 몇몇 사람들로부터 빅이 매우 친절한 나이스 가이라고 들었다. 뭐 만나본 적도 없어서 일화는 별로 없지만 조금 이야기 해보면, 내가 미네소타의 학과장에게 포닥 오퍼 수락 메일을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아 빅에게서 우리 조합수학 그룹에 오게되서 매우 기쁘고 환영한다며 궁금한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는 친절한 메일을 받았다. 사실 내가 먼저 보내려고 했었는데 빅에게서 바로 와서 놀랐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내가 이메일로 프로페서 누구누구께 라고 보내자 그냥 빅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선 내가 강의에 대한 몇가지 질문을 했더니 나를 비롯한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조합수학 그룹에서 할수 있는 강의들의 목록과 상세한 설명을 해주며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골라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고 싶은 강의들을 이야기 했더니 좋다면서 남은 강의는 자기나 다른 나이든 교수들이 하면 된다고 했다.
사실 선임 교수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강의를 할 수도 있을 텐데 새로 오는 교수나 포닥들을 먼저 배려해서 원하는 강의를 하게 해주고 남는 것들을 한다는 것에 고맙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선배의 모습이 아닐까? 후배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잘 전수해 주고 각자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며 자신의 실력을 뛰어넘는 후배들을 보며 기뻐하고 자신 또한 쉽게 따라잡히거나 뒤쳐지지 않도록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는 것. 이런 것이 가능하기 위한 가장 기본은 후배들도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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